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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 소개
해방 후 한국독립당은 1946년 3월 안재홍의 국민당과 신한민족당 계열 등과 이 합당을 통해 국내에서의 활동반경을 확대하였다.
한국독립당은 3당합당을 통해 전국적 조직으로 확대되엇고, 전국에 걸쳐 시.도 당을 포함 약 60여 군데에 걸쳐 지역당부를 결성항 정당으로 발전하였다.
기본적으로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결정한 ‘한반도신탁통치’를 1942년 미국에 의해 주창된
「국제공관론」의 연장선으로 파악하고, 외세에 의한 신탁통치 반대와 즉시 독립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미.소공위 결렬 후, 한반도의 문제에 UN으로 이관되고, 이를 통해 남한만의 단독선거가 진행되자,
‘단독정부 수립 반대’와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활동으로 운동방향을 전환하였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1948년 4월 ‘남북협상’에 참여하여 ‘내전반대’와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투쟁하였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이후에도 김규식 선생의 ‘민족자주연맹’과 함께 분단 후 최초이자 최대규모의 통일단체인 “통일독립촉진회”룰 결성,
통일을 위한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1949년 6월 백번 김구의 암살과 1950년 6.25 전쟁으로 활동이 중단되었고, 상당수의 한국독립당 당원들은 전쟁의 와중에 피해를 입기도 하였다.
1960년 4월 혁명이 발행한 후, 백파 김학규과 백강 조경한 선생과 함께 7.29 총선에 참여하였으나, 성과를 내지 못한 후,
5.16군사쿠테타로 인해 정치활동이 규제되기도 하였다.
1963년 민정이양 후 김홍일 장군을 중심으로 한독당 재건운동이 있었고,
1965년 한일협정 후 보궐선거에서 김두한후보가 한독당이름으로 보궐선거에서 당선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후 공화당 신민당의 양당체제하에서 당세를 확장하는데 어려움에 직면하였고,
마침내 1970년 당시 야당인 신민당과 합당하면서 한독당의 이름이 사라지게 되었다.
해방 후의 활동과 민족주의 세력의 명맥을 이어온 한독당의 역사 40년을 살펴보는 것은 민족주의 운동을 살펴보는 것이고,
남한 내 통일운동의 원류를 짚어보는 것이기에 그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다.